
‘색채의 마술사’ 박생광의 색과 멋을 만나다
박생광 화백은 한국 채색화의 대가이자 색채의 마술사로 통한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고, 호는 ‘내고(乃古)’, ‘그대로’이다. 특히 자신의 색채와 미감이 ‘그 자체로 한국적인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믿음’에서 한글‘그대로’를 호로 사용했다. 진주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다녔으며, 이 시기에 한국 불교계의 거목 청담스님을 만나 인연을 맺어 작품에도 등장한다.
1920년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지금의 교토예술대학)에서 일본 화단의 ‘근대 교토파’라고 불렸던 다케우치 세이호우(竹內炳鳳), 무라카미 가가쿠(村上華岳) 등에게 새로운 감각의 일본화를 배웠다. 해방을 맞아 귀국 후에는 진주에 머물다가 서울의 홍익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진채(塡彩)를 사용하여 민속, 불교, 무속 등의 다양한 한국적인 소재를 독창적인 조형어법으로 재해석해 주목받았다.
박생광의 작품은 크게 수련기(1950년대 후반기), 추상화 시기(1950년대 후반~1974년), 2차 일본시기(1974년~1977년), 한국적 미감의 전성기(1977년 이후)로 구분된다. 특히 1980년대 백상기념관(1981년)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1984년) 전시 등을 통해 한국화단에 큰 반향과 새로운 채색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작품에서 색채는 강렬함을 넘어 신기와 광기 어린 ‘경의로운 채색화’의 경지를 보여준다. 1982년 인도 성지순례를 마친 이후 말년의 작품들은 ‘박생광 스타일을 완성시킨 대표작’으로 꼽힌다. 198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대표적인 전시로는 1985년 파리 그랑팔레미술관 <르 살롱-85> 특별 초대전과 1986년 호암갤러리 유작전, 2019년 대구시립미술관, 2022년 강릉시립미술관, 2023년 한가람미술관 등의 기획초대 개인전이 있다.
한때, 왜색화가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투철한 예술가적 창작 의지와 실험정신으로 확고하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뤄냈다. 미술사적 위치로도 ‘우리나라 채색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역사적 주체성을 확립한 작가’로 평가된다.

‘색채의 마술사’ 박생광의 색과 멋을 만나다
박생광 화백은 한국 채색화의 대가이자 색채의 마술사로 통한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고, 호는 ‘내고(乃古)’, ‘그대로’이다. 특히 자신의 색채와 미감이 ‘그 자체로 한국적인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믿음’에서 한글‘그대로’를 호로 사용했다. 진주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다녔으며, 이 시기에 한국 불교계의 거목 청담스님을 만나 인연을 맺어 작품에도 등장한다.
1920년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지금의 교토예술대학)에서 일본 화단의 ‘근대 교토파’라고 불렸던 다케우치 세이호우(竹內炳鳳), 무라카미 가가쿠(村上華岳) 등에게 새로운 감각의 일본화를 배웠다. 해방을 맞아 귀국 후에는 진주에 머물다가 서울의 홍익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진채(塡彩)를 사용하여 민속, 불교, 무속 등의 다양한 한국적인 소재를 독창적인 조형어법으로 재해석해 주목받았다.
박생광의 작품은 크게 수련기(1950년대 후반기), 추상화 시기(1950년대 후반~1974년), 2차 일본시기(1974년~1977년), 한국적 미감의 전성기(1977년 이후)로 구분된다. 특히 1980년대 백상기념관(1981년)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1984년) 전시 등을 통해 한국화단에 큰 반향과 새로운 채색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작품에서 색채는 강렬함을 넘어 신기와 광기 어린 ‘경의로운 채색화’의 경지를 보여준다. 1982년 인도 성지순례를 마친 이후 말년의 작품들은 ‘박생광 스타일을 완성시킨 대표작’으로 꼽힌다. 198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대표적인 전시로는 1985년 파리 그랑팔레미술관 <르 살롱-85> 특별 초대전과 1986년 호암갤러리 유작전, 2019년 대구시립미술관, 2022년 강릉시립미술관, 2023년 한가람미술관 등의 기획초대 개인전이 있다.
한때, 왜색화가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투철한 예술가적 창작 의지와 실험정신으로 확고하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뤄냈다. 미술사적 위치로도 ‘우리나라 채색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역사적 주체성을 확립한 작가’로 평가된다.